이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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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이로

 

" 카이로는 카오스다 "

카이로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당신은 혼돈을 만날 것입니다.

파라오의 피라미드와 고층빌딩, 까만 매연을 뿜어내며 달리는 자동차 사이를 노새 탄 노인이 태연하게 지나가고, 알아볼 수 없는 아랍어 간판들과 곳곳의 모스크에서 들려오는 코란 읽는 소리...

그러나 기자의 피라미드를 마주하는 순간, 바로 고대 이집트로 빠져드는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어지러움과 고대의 영광이 빛나는 도시를 떠나 기차에 몸을 싣는 순간 카이로의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은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기자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쿠푸 왕의 피라미드(Pyramid of Khufu)
세계 최대의 건축물로 지저부의 1변이 230m,창건 때의 높이는 146.7m였지만, 지금은 꼭대기 부분이 무너져서 137.2m, 부피는 259만 4914 평방미터이다. 피라미드를 구성하는 석재의 평균 무게는 1개당 2.5톤으로 추정되고, 사용된 석재 숫자는 230만개라고 하고 268만개라고도 한다. 돌을 쌓은 단층의 수효는 원래 210단인데 지금 남아 있는 것은 203개이다.

쿠푸왕의 것을 비롯해 이곳 기제의 3대 피라미드는 약 4500년 전인 BC 26세기경에 건조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가까이 가보면 겉에 돌을 쌓아 올린 것이 드러나 보이지만, 건축할 때에는 화장석으로 겉을 마무리해서 매끄럽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풍화와 약탈로 인해 화장석이 벗겨져서 지금과 같이 되어 버렸다.


내부 관람을 하려면, 9세기 알마문이 뚫은 북쪽 도굴 구멍으로 들어간다. 이 입구의 위쪽으로 약 10m되는 곳에 원래의 입구가 있었지만 지금은 폐쇄되어 있다. 입구를 들어가면 곧 오른쪽으로 높이 약 1.2m의 좁고 가파른 통로를 오르게 되고, 다시 높이 약 8.5m의 큰 회랑을 거쳐 왕의 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내부로 들어가려면 피라미드의 석축을 오르고, 좁고 가파른 통로를 올라가야하므로 여성도 바지를 입는 것이 좋다.


카프라 왕의 프라미드(Pyramid of Khafra)

3대 피라미드의 중앙에 위치하고, 쿠푸 왕의 피라미드보다 좀 작은 듯하지만, 높이가 143m로 지금은 가장 높다. 또한 쿠푸 왕의 것보다 좀 높은 곳에 세워져 있으므로, 보는 방향에 따라서는 좀 더 크게 보인다. 피라미드 가운데 비교적 잘 보존되고 표면의 화장석도 일부 남아있어 가장 아름다운 외관을 자랑한다. 이 피라미드의 동쪽에 신전이 축조되어, 스핑크스 남동쪽에 세워진 아안신전과 참배용 도로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곳도 북쪽의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멘카우라 왕의 피라미드(Pyramid of Menkaura)
기저부의 1변이 105m,높이 65m,3대 피라미드 중에서는 가장 작다. 카프라 왕의 것과 같은 배열의 신전이다. 하안신전을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은 폐허로 변했다. 기제의 3대 피라미드의 석재는 대부분 석회암인데, 이는 기제 남동쪽 약 15km 지점의 투라에서 잘라낸 듯하며, 화장석으로 쓰인 화강은 남쪽으로 850Km나 떨어진 아스완에서 나일강을 이용하여 운반된 듯하다. 찾아오는 관광객이 적고 도로에 떨어져 있어서 정적에 싸여 있다.

스핑크스(Sphinx)

피라미드와 마찬가지로 기제의 스핑크스도 수많은 순례자와 여행자를 매료시켰다. 1735년 마예는 스핑크스를 '사자의 몸통, 여자의 머리'라고 생각하고 '처녀와 사자가 한 몸을 이룬 12궁일지 모른다.'고 적었다. 아주 오래 전에 그려진 스핑크스는 모두 모래 위에 불쑥 튀어나온 기념비적인 머리의 형태만이 묘사되어 있다. 1816년 카비글리아의 지휘로 시작되었던모래 제거 작업은 한때 중단되었다가 1886년 마스페로와 브룩슈의 작업으로 파라오 카프렌의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건축된 배를 깔고 엎드려 있는 기제의 사자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났다. 높이 21m에 길이 57m. 스핑크스 중에 가장 오래되고 큰 것으로 유명한 것은 제 4왕조의 카프라왕의 피라미드에 딸린 스핑크스이다. 이것은 자연 암석을 이용하여 조각한 것인데, 군데군데 보수되어 있다. 전장은 약 70m,높이 약 20m라는 거상으로, 그 얼굴은 상당히 파손되어 있으나 카프라왕의 생전 얼굴이라고 한다. 앞으로 뻗은 앞다리에는 투트메스4세의 석비가 있다.


이 스핑크스는 <지평선 상의 매>를 나타내고, 태양신의 상징이라고 한다. 스핑크스는 머리는 사람이고 몸통은 사자인 신화적 존재로서 날개가 있는 경우도 있다. 이집트가 발상지라고 하는데 그 후에는 시리아, 아나톨리아와 지중해 그리스 본토 등에 전파되었다. 이집트의 스핑크스는 일찍이 제4왕조기(BC2650무렵)에 기자에 있는 왕 카프라의 피라미드 남동쪽에 조각된 대스핑크스로 등장한다. 이것은 왕자신의 상이라 한다. 애초에 왕을 사자로 여긴 이집트의 옛 관념에서 나왔다 하며 왕비도 여성 스핑크스로 표현되었다. BC2000년대에는 스핑크스는 종종 신, 예컨대 태양신의 화신이라고 믿어졌다.


BC2000년대 중엽부터 BC1000년대 전반에 걸쳐 아나톨리아, 시리아, 팔레스타인, 키프로스 등에서도 스핑크스가 중요시되었다는 것은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밝혀져 왔다. 스핑크스 석상은 문 양쪽에 세워지거나 건조물의 일부로 사용되었으며, 상아의 부조 또는 청동상이 종교색 짙은 장식으로 사용되었다. 이들은 모두 날개 돋친 상이며, 수호신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리스의 스핑크스는 처음에는 죽음으로부터 지켜주는 신학적 존재로서 액막이 목적으로 방패나 무덤 등에 새겼으나, 뒤에 테베의 전설에 흡수되어 유명해졌다.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
이집트 고대 파라오 왕조 유물은 과거 그리스・로마시대부터 해외로 반출되기 시작하였으며, 이슬람 시대에는 모스크 건축 등의 자재로 사용하기위해 석조 유물 등이 다수 파손되었다. 19C 샹폴리용(프랑스인)의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으로 이집트 역사 및 문화의 중요성이 인식됨에 따라 이집트 유물 보존 조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 1834년 이집트 유물 보호국 설립

- 1858 AUGUST MARIETTE이 유물 감독관으로 임명

- 1863 ISMAIL 왕이 BULAQ 지역에 유뮬 보관소(구 박물관) 건립

현 카이로 박물관 건물(카이로 시내 TAHRIR 광장에 소재)은 BULAQ 박물관이 협소하여 1895 ~ 1902년간 국제입찰로 건축(MARIETTE이 건축 감독 및 지휘)되었다. 1층 51개 전시실에는 고왕조, 중왕조, 신왕조의 유물과 그레코 로망시대의 유물이 (정문 입구에서 시계 방향으로) 전시되어 있으며, 2층 전시실에는 투탄카문왕의 무덤에서 발굴된 유물과 이집트 신왕조시대 왕들의 미이라 및 기타 유물들이 보존, 전시되어 있다.


1층 주요 전시물

고왕조 시대의 유물 멘카우레왕과 두 여신의 석상, 카프레왕의 석상, 서기관의 좌상, 촌장의 목상, 귀족(라호텝) 부부상, 거위 벽화 등

중왕조 시대의 유물 멘투호텝 1세의 석상, 귀족 하르호텝의 분묘 벽화 등

신왕조 시대의 유물 핫셉슈트 여왕의 석상, 투투모세 3세의 석상 HATHOR 신(암소신)의 석상, 아켄아톤과 부인 네페르타리의 석상, 람세스 2세의 석상 등

기타 석관, 목선, 미이라 수술대, 로제타 수톤 모형 등 전시


2층 주요 전시실

투탄카문 왕의 유물 1922년 영국인 HOWARD CARTER가 LUXOR 왕들의 계곡에서 발굴한 투탄카문왕의 유물 전시. 왕의 전차, 목관, 황금관, 황금 마스크, 알라바스타 항아리, 침대, 의자 우산 등

미이라실 입구에는 미이라 수술 도구 및 재료가 전시되어 있고, 미이라 수술 방법이 간략히 설명되어 있고 실내에는 람세스 2세 등 18 ~ 20왕조 왕들의 미이라 수구 전시.


 

 
칸 카릴리 시장
칸 카릴리 시장은 남대문 시장같은 엄청나게 큰 규모의 재래시장이다. 혹여 기념품을 사야겠거든 잘 참으셨다가 칸 카릴리에서 구매하는 것이 좋다. 지금껏 이집트를 다니면서 보아왔던 모든 기념품이 다 있는데 가격이 훨씬 싸다. 물론 재질이 떨어지는 것들도 있지만 외관상으로는 알 수 없으나 저렴한 쇼핑이 가능하다.

                    

                     

 


오울드 카이로
카이로의 구시가지로 BC 6세기 부터 사람들이 주거하던 곳으로서 2세기에 로마에 의해 성곽이 만들어졌으며 또 그리스 정교회에서 분류된 콥틱교 교황의 주장에 의하면 성서에 나오는 성가족Holy Family 이 사년정도 이집트에 머물렀다고 했던 그시기에 이 콥틱에 머물렀다고 하는 곳이다. 콥틱 카이로Coptic Cairo라고도 불린다.


 

• 아스완

인류가 구한 문화유산을 찾아서...

아스완은 인류가 구한 세계문화유산을 보기 위한 거점이 되는 도시입니다.

람세스 2세는 자신의 즉위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끝이 없을 것 같은 사막 위에 입이 쩍 벌어질 만큼 거대한 신전을 지었습니다. 건축에 대한 광기는 인도의 타지마할을 지었던 샤자한과 버금가는 그것이었지요.

그런데 그 위대한 신전이 나일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지어지는 하이댐으로 인해 물에 잠길 위기에 처하자. 전 세계가 나서서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문화재 이전 공사를 벌인 끝에 완전히 해체하여 서쪽으로 120m 옮겨 앉게 된 것이지요. 이 엄청난 공사를 두고 이집트의 대통령 사다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 인류애 라는 숭고한 목적으로 함께 일할 때 우리는 또 다른 기적을 만들 수 있다 '
 

아부심벨
누비아 지방의 아부심벨에 있으며 제19왕조의 람세스 2세(재위 BC 1301∼BC 1235)가 천연의 사암층(沙岩層)을 뚫어서 건립했다. 왕 자신을 위한 대신전과 왕비 네페러타리를 위한 소신전으로 되어 있다. 대신전은 정면 높이 32m, 너비 38m, 안쪽 길이 63m이며 입구에 높이 22m의 람세스 2세의 상(像) 4개가 있다. 제1실에는 람세스 2세를 오시리스 신을 본떠 만든 8체의 상과 6면의 넓은 전쟁화(戰爭畵)와 명문(銘文)이 있다.

제2실과 제3실의 벽화는 종교의식(宗敎儀式)에 관한 것이고 제4실에는 4개의 신상(神像:라호라크티, 아몬레, 프타하, 람세스)이 있다. 신상은 항시 어둠 속에 있으나 2월 20일경과 10월 20일경 두 번만은 아침 해가 신상의 전신을 비치게 되어 있다. 다만 죽음의 신 프타하만은 그때도 어둠 속에 있다. 이 날짜의 의미에 대한 정설은 아직 없다.

소신전은 대신전에서 90m 떨어진 북쪽에 있는데, 정면 높이 12m, 너비 26m, 안쪽 길이 20m이며 입구에 높이 10m의 상 6개가 있다. 4개는 왕을, 2개는 왕비를 나타낸다. 제1실에는 12개의 하트호르 여신상(女神像)의 기둥이 있으며, 각 기둥에는 왕과 왕비의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벽면에는 왕이 포로를 희생으로 신에게 바치며 왕비가 옆에 시립해 있는 그림이 있고, 제3실에는 공물봉헌(供物奉獻)의 그림이 있으며 안쪽 중앙에는 소의 모습을 한 하트호르 신상이 있다.


아스완댐 건설에 따라 이 지점의 수위(水位)가 60m 높아져 수몰의 운명에 놓이게 되었으나 유네스코(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의 헌신적인 노력과 현대공학의 혜택으로 1963∼1966년에 이 신전을 원형대로 70m를 끌어올려 영구히 보존하게 되었다.

 

하이댐 
현지명 앗 사드 알리인 하이댐은 폭 3,600m, 높이 111m 로 아스완 댐으로 다스리지 못한 나일강의 범람을 막기위해 대 역사가 이루어졌다. 이 댐의 건설로 인해 비옥하던 델타 지역의 토양이 황폐해 지는 등의 부작용이 생기고, 생태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쳐 또 다른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또한 하이댐으로 인해 생긴 낫세르호에 의해 일부 유적들이 수장된 곳도 있다. 특히 아부심벨은 그 대표적인 것으로 유네스코가 이 세계적인 유물의 보존을 위해 상류로 끌어올리는 대역사가 같이 이루어졌다. 



이시스 신전 (The Temple of Isis, Philae Temple)

이시스의 신전은 프톨레마이우스 왕조 시기의 것으로 현재는 아질키아 섬(island of Agilkia)에 위치하고 있지만 원래는 필라에섬(island of Philae)에 자리잡고 있었다. 1898년~1912년에 영국인들에 의해 아스완댐이 건설된 이후 필라에섬은 8월부터 12월까지는 완전히 수몰되게 되었다. 좀 더 완벽한 홍수통제를 위해 1971년에 완공된 아스온 하이댐은 이 섬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따라서 1960년대 후반에 이 신전은 다른 섬으로 이전을 하였는데, 지금도 여전히 필레 신전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신전은 오시리스의 아내이자 호루스의 어머니인 이시스 여신을 위한 신전으로 기원전 300년경에 시작해 수백년에 걸쳐 완성되어 이집트, 그리스, 로마 양식이 모두 혼합되어 있다.
 



미완성의 오벨리스크

고대 신전과 조각상에는 대량의 붉은 화강암이 이곳 아스완 부근의 채석장에서 옮겨져서 사용되었다. 이 미완성의 오벨리스크는 북쪽 채석장에 위치하며, 원래 카르낙 신전에 사용될 오벨리스크를 만들기 위해 바위에서 쪼아낸 400m에 이르는 조각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곳은 고대 이집트인들의 건축과 조각기술을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유적자료이다.
 



 

룩소르

고대 이집트의 풍요 룩소르

'일리아드 오디세이'에서 호머는 룩소르를 수백 개의 문이 있는 도시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러나 수백개의 문은 모래바람 속에 스러지고...

지금은 도시 곳곳에 퍼즐 조각처럼 남아있는 유적들이 당시 영화로웠던 룩소르를 상상하게 합니다.

당신은 과거로 가는 퍼즐 맞추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직접 가서 확인해 보십시오.

 

카르낙 신전
태양신 AMUN 신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MUT 신전, MONTU 신전, KHONSU 신전 등 LUXOR의 수호신들을 모신 신전들이 기본 신전들로 배치되어 있으며, TUTHMOSIS 3세의 신전, AMENHOTEP 2세 및 3세의 신전, RAMESES 3세의 신전 등 다수의 소규모 신전들도 복합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고대 이집트 중왕국 시대의 제 12왕조(BC 20세기)때부터 건축되기 시작하여 프톨레미 왕가(BC 1세기)에 이르기까지 약 2000년에 걸쳐 계속 증축되어 왔으나, 기본 구조는 제1탑문(PYLON)이 건설된 제 25왕조(BC 7세기)때 완성된 것으로 알려진다. 전체 신전 배치는 남북으로 되어 있으나, AMUN 신전은 동서로 배치되어 있으며 전체 신전 규모는 남북으로 2km,동서로 500-600m 정도 크기이다.

AMUN 신전 제1탑문(정문) 앞 입구에는 양의 머리에 사자의 몸통을 가진 스핑크스들이 도열한 스핑크스 대로가 남쪽으로 약 2km 떨어진 룩소르 신전 입구까지 연결된다. AMUN 신전의 제1탑문을 지나면 22왕조때 건축된 대광장(GREAT COURT)이 나온다. 넓이가 약 8,650평방미터에 달하는 대광장의 북쪽에는 AMUN신, MUT신, KHONSU신의 성스러운 배를 모셔두었던 SETI 2세의 신전이 있고, 대광장의 남쪽에는 RAMESES 3세의 신전이 있다. 대광장을 지나면 제2탑문 앞에 붉은 화강암으로 조각된 RAMESES 2세의 석상을 볼 수 있다. 제2탑문은 18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호렘헵이 건축을 시작하여 19왕조 RAMESES 2세때 완성되었다.


제2탑문을 지나면 열주전(GREAT HYPOSTYLE HALL)이 나오는데 그 넓이는 5,356평방미터로서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과 런던의 성바울성당의 크기를 합친 것과 같다고 한다. 이 열주전은 134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앙 12개(좌우 6개씩) 기둥은 아멘호텝 3세가 건축하였으며 외곽의 파피루스 모양의 122개 기둥들은 세티 1세가 건축하기 시작하여 람세스 2세때 완공되었다. 가운데 12개 기둥과 외곽의 122개 기둥간의 높이 차이를 이용하여 햇살을 받아들이는 창문을 천장에 건축하였다. 고대에 기둥을 채색한 흔적이 아직도 기둥 윗부분에 약간씩 남이 있다.


제3탑문은 아멘호텝 3세때 건축되었으며, 제4탑문은 투트모스 1세때 건축된 것을 세티 2세가 복원하였다. 제3탑문과 제4탑문 사이에는 작은 광장(SMALL COURT)이 위치하며, 동 광장에는 투트모스 1세의 OBELISK가 있다.(높이 23미터, 무게 143톤) 제4탑문 안쪽에는 핫쳅수트 여왕의 OBELISK가 있다.(높이 27.5미터, 무게 320톤) 투트모스 1세와 3세가 건설한 제5탑문과 제6탑문을 지나면 태양신 AMUN의 지성소에 도달한다.


지성소는 동쪽과 서쪽으로 개방되어 일출과 일몰 때 햇살이 AMUN신의 지성소를 비출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지성소는 2중 구조로 되어 있는데 외실은 투트모스 3세가 건축한 것이며 내실은 기원전 3년경 프톨레미스 왕조가 건설하였다. 지성소 남쪽에는 제사장들이 종교의식을 행하기 전 목욕 재개하던 성스러운 호수가 있고, 성스러운 호수 입구에는 고대 이집트에서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던 딱정벌레(SCARAB)의 석상이 있다. 호수 입구쪽에 핫쳅수트 여왕의 누워있는 OBELISK가 있다.




룩소르 신전
룩소르의 중심지이고 나일강변에서 돋보이는 장소에 거대한 신전이 있다. 이것이 신왕국시대의 황금기였던 약 200년 사이에 걸쳐 완성된 대신전이며 비교적 모든 부분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조형성 넘치는 건축물이다. 제18대 왕조 아멘호텝 3세가 창건, 후에 람세스 2세가 탑문과 제1중정을 부설했다. 원래 카르낙 신전의 부속 신전으로 건립됐기 때문에 카르낙 신전과 참배길이 연결돼 있어 왕조 시대에는 매년 신년이 되면 배의 출영식이 성대히 행해졌다.

동 신정은 나일강 동안에 나일강을 따라 남북으로 건축되었으며 폭 40 - 70m 길이 180 - 200m 정도의 규모이며 태양신 AMUN을 숭배하기 위한 신전이다. 신전 탑문 앞에서 시작되는 스핑크스 대로는 2km 정도 떨어진 KARNAK 신전까지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정문 외벽에는 KADESH 전투(RAMESES 2세가 HITTITES 족을 격퇴) 장면이 벽화로 묘사되어 있으며,정문 좌우에 RAMESES 2세의 좌상 2개 및 입상 4개가 세워져 있었으나, 현재는 좌상 2개와 입상 1개만 남아 있다.(입상 2개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 또한, 정문 좌우에 원래 2개의 OBELISK가 있었으나 하나는 19세기에 MUHAMMAN ALI 왕이 프랑스에 기증(콩코드 광장에 전시)함으로써 현재 하나만 남아 있다.

탑문 안쪽의 RAMESES 2세 광장에는 TUTHMOSIS 3세(BC 1504 - 1450간 재위) 당시 건축된 성소가 남아 있으며, 또한 후대에 건축된 회교 모스크 건물이 광장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동 광장 주위를 74개의 기둥이 2중으로 둘러싸고 있다.


AMENHOTEP 3세의 열주 RAMESES 2세 광장을 지나면 AMENHOTEP 3세의 열주(16미터 높이의 파피루스 모양을 가진 기둥 14개) 있으며 RAMESES 2세의 석상들이 기둥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AMENHOTP 3세의 광장 열주를 지나면 AMENHOTEP 3세의 광장(약 2,400평방미터)이 나오는 데 RAMESES 2세의 광장과 모양이 유사하며 파피루스 모양의 기둥이 광장 3면을 2중으로 둘러싸고 있다.


신전 내부 AMENHOTEP 3세의 광장을 지나면 32개의 기둥이 배열된 다주식 광장(HYPOSTYLE HALL)이 나오며 다주식 광장을 지나면 8개의 기둥이 있었던 제1전실에 이른다. 제1전실(ANTE CHAMBER)은 서기 4세기에 기둥들이 제거된 후 콥틱교회 예배장소로 변경되었으며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제1전실을 지나면 4개의 기둥이 있었던 제 2 전실이 있고 그 안쪽에 태양신 AMUN의 성스러운 배를 모셨던 지성소가 위치한다.




왕가의 계곡

신왕국 시대의 파라오들이 도굴을 피하기 위해 암굴을 파서 만든 묘지로 모든 묘가 바위를 뚫고 만든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발견된 64개의 묘 가운데 도굴을 면한 것은 겨우 투탄카멘의 묘뿐이다. 중요한 묘는 동쪽 계곡에 있다. 그 중 최대는 세티1세의 묘로 투탄카멘 묘의 20배에 달한다.


신왕조 초기 무덤(예:TUTHMOSIS 3세)

통로가 직각으로 굽어진 형태이며 내부 벽화 바탕색이 엷은 황색(파피루스 색)이고 사자의 서 내용도 단순하다.


후기 무덤(예:SETI 1세)

통로가 직선 형태로 오렌지색 벽화 바탕에 다양한 내용의 사자의 서를 기록하고 있다.


투탄카멘의 무덤

너무나도 유명한 무덤으로 20세기 초에 발굴되었으며 현재 황금마스크를 포함한 수많은 부장품이 카이로의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왕의 미이라는 지금도 현실에 안치되어 있다. 현실 정면의 벽에는 오시리스 신의 모양을 한 투탄카멘왕과 후계자인 아이 왕이 묘사되어 있다.


투트메스 3세

현실의 선묘화가 아름답지만 실내가 어두우므로 손전등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아멘호테프 2세

현실의 6개의 기둥이 오시리스신·아누비스신·하토르신·호루스신과 함께 아멘호테프 2세가 그려져 있다.



 

핫쳅수트 신전

바위산을 뒤로 하고 서있는 이신전은 거대한 3층으로 이루어진 테라식 건물이다. 이집트 최초의 여왕이었던 핫쳅수트는 남편인 투트모스 2세가 죽자 어린 투트모스 3세의 섭정을 하다가 스스로 파라오가 되었다.


이 신전의 규모는 거대하며, 핫쳅수트가 얼마나 자신의 왕권을 부각시키려 노력하였는가를 알 수 있으며 그 후 그녀의 독정에 대한 보복성 회손으로 핫쳅수트의 신상이나 벽화의 얼굴 부분이 손상되어 있다. 또한 벽화 중에는 당시 푼트(지금의 소말리아)까지 교역을 했던 흔적을 볼 수 있다.



하부템플(람세스 3세 장제전)

라메세움 남서쪽1.5km 지점, 농경지가 끝나는 곳에 메디네트 하부의 웅장한 자태가 우뚝 서 있다. 아몬신이 처음으로 출현한 대초의 언덕 자리에 이 신전을 건설하게 한 이는 람세스 3세(기원전 1186~1154)이다. 이 유적지는 대체적으로 람세스 3세가 모델로 여긴 람세스 2세의 장례신전 라메세움을 모방하여 세워진 것으로 간주된다.

보존상태가 좋은 메디네트 하부는 ‘도시 신전’의 놀라운 예라 할 수 있다. 파라오의 대신전 외에도 다른 여러 신성한 건물들과 왕궁, 사제들의 거처, 신성호수, 나일강의 수위표, 작업장, 행정청, 선창, 창고, 도서관, 마구간, 우물 등은 아직도 그 모습을 알아볼 수 있다. 6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일했으며, 재상이 여기에 자신의 사무실을 두고 법정을 주관했다.

메디네트 하부의 벽에는 부조가 다른 곳에 비해 깊이 새겨져 잇는데 그 이유는 이곳을 허물어 돌을 다른 곳에 재활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멤논의 거상 

아멘호테프 3세의 좌상으로 높이가 21M 에 달하는 이 거상은 원래 아멘호테프 3세의 신전앞에 위치하였으나, 지금은 신전의 자취가 거의 없어 잔해만 남아 있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조금은 횡한 벌판에 우뚝 솟은 거상만이 남아 있는 형상이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에 그리스 신전 멤논의 것과 같다하여 현재 멤논의 거상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로마시대때의 대지진의 영향으로 또한 일교차에 의한 수축과 팽창의 반복으로 균열이 점점 커져 위태로웠으나 보수 공사를 통해 지금은 안정이 되었다.


 


바하리야 사막

검은 깨를 뿌려놓은 듯한 흑사막과 하얀 꽃소금을 뿌려놓은 듯한 백사막으로 떠나세요.

금방이라도 나를 태워버릴 듯한 사막의 태양 아래서 마시는 물 한 모금은 세상의 시름을 털어내기에 충분하고, 달이 뜬 사막을 맨발로 걷다 만나는 별똥별은 내 안에 한줄기 아련한 줄을 긋고 사라집니다.

사막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배낭여행의 진수.

끝없이 펼쳐진 이집트의 사막에 몸을 던지자.

밤하늘을 이고 누우니 뼈속까지 삶이 스며든다.

우주의 무량한 별들이 내 혼을 씻어내누나.


 


• 다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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