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
아테네
크레타 산토리니 델피
• 아테네 신들의 도시이자 올림픽이 태어난 도시... 아테네의 "신성한 바위" 아크로폴리스에 오르면 신들은 떠나고, 인간들이 신을 위해 지은 집만이 관광객의 호기심을 만족시켜줍니다. 그러나 발아래 보이는 회색의 도시로 내려가 미로 같은 골목길을 헤메듯이 걷다보면 아테네 사람들의 일상 속에 살고 있는 신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초기 올림픽에서는 여자들이 경기를 관전할 수 없었다는데, 남자 선수들이 알몸으로 경기를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늘 올림픽스타디움에 들러 상상에 나래를 펼친다해도 막을 사람은 없습니다.
국립고고학 박물관 세계 10대 박물관 안에 들 정도로 잘 알려진 곳으로,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비잔틴 시대에 이르는 수많은 유물과 조각품 및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품들은 신화에 나오는 것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많아 더욱 흥미롭다.
세계 각지에서 고대 그리스의 발굴품을 소집해 놓았으며 특히 눈을 끄는 것은 미케네 시대의 마스크, 단검, 컵, 조각상 등이다. 주요 전시물은 독일의 유명한 고고학자 슐레이만에 의해 발굴된 것들이 많은데 여러신들의 신상, 그리그 시대의 조각상, 당시의 생활용품 등이다.
수집품의 중심은
에게문명 후기의 미케네의 출토품, 아르카이크기에서 고전기에 걸친 조상(彫像)·묘비·도기 등이며, 《아트레우스의 비보》 《바페이오의
황금배》 《알테미시온의 포세이돈》 《안티쿠테라의 청년》 《헤게소의 묘비》 등은 특히 유명하다.
아크로폴리스
아테네 한복판에 솟아 있는 언덕으로 아테네의 상징적인 유적지이자 서양세계의 가장 중요한 고대 기념물이다. 파르테논신전을 비롯하여 에렉티온신전, 나이키신전 등 수많은 신전들이 2,5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채 말 없이 서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올림포스의 신들에게 제사 지내던 성역으로, 지도층 인사들조차 출입이 제한되었던 곳이다.
아크로폴리스(높은 곳에 위치한 도시라는 뜻)에 최초로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시대부터이다. 최초의 신전들이 미케네문명 시대에 여신 아테나에 대한 숭배로 지어지기 시작하였다. BC6세기가 되어서야 사람들이 아크로폴리스 위에 살기 시작하였고, 그러나 BC510년에 델피신탁(Delphic Oracle)으로 신의 영역으로 선포되었다. 그러나 아크로폴리스의 모든 건물들이 살라미스해전(BC480)의 전야에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재로 변했다. 페리클레스가 아크로폴리스를 재건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아크로폴리스를 신전의 도시로 변형시켰다. 이로써 고전 그리스 성취의 절정을 이룩하게 하였다. 이후 아크로폴리스는 수세기간에 걸친 재난을 겪어야 했다. 외국의 점령 기간 동안의 파괴행위, 외국 고고학자들의 절도행위, 독립에 따른 부적절한 보수, 방문객들의 낙서, 지진 등. 1687년의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터키 공격은 최악이었다. 이때 아크로폴리스가 폭발되어 전 건물이 소실되었다. 터키로부터 그리스의 독립 이후 아크로폴리스 복원작업이 신생그리스정부의 첫번째 과제로 시작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복원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위협은 산업화와 교통 오염에 따른 산성비로, 아크로폴리스를 부식시키고 있다. 따라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주요한 보수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파르테논신전
그리스에 온 관광객이 반드시 들르는 아크로폴리스 최대의 신전. 파르테논이란 '처녀의 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아테네 시의 수호신인 아테나를 모신 곳으로, 아크로폴리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지어졌다. 이 신전은 두 가지 목적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하나는 페리클레스에 의해 아테네의 수호신 아테나를 모시기 위한 것이고, 또 하나는 델로스로부터 가져온 조공품들을 보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 신전은 페이디아스(Pheidias)의 감독하에 익티누스(Ictinus)와 칼리크라테스(Callicrates)에 의해 디자인되었다. BC447년에 건조되기 시작하여 BC438년에 완성되었다. 이 신전 역시 1687년 베네치아 침공 때 폭발되는 피해를 입었다. 그 잔해 중 가장 위대한 부분이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파르테논신전의 천장은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었으며, 별모양의 금박장식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신전이 지어질 당시 있었던 조각상이 있다. 즉 이 파르테논신전의 중앙에 있었던 아테나상(Athena of the City)으로, 페이디아스에 의해 디자인되었으며, BC432년에 완성되었다. BC426년에 이 조각상은 콘스탄틴노플로 옮겨졌으며, 여기에서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이 상의 로만 카피(Roman Copy)가 현재 국립고고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파르테논 신전은 얼핏 보아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바닥 중앙이 약간 솟아 있고 기둥과 기둥 사이의 간격도 일정하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의 기술자들이 사람 눈의 착시현상까지 계산하여 멀리서 바라보도록 설계, 축조한 것이라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687년 베네치아 군의 포격으로 파괴된 것을 후에 부분적으로 복원하여 오늘날의 모습이 된 것이다. 도리스 양식 최고의 건물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에렉티온신전
에렉티온신전의 여인상 기둥
파르테논신전 북쪽에 세워진 이오니아 양식의 작은 신전. 파르테논신전이 아크로폴리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기념물이긴 하나 그것은 신전이라기보다는 전시기념물에 가까웁다. 아크로폴리스에서 신전 역할을 한 곳이 바로 이 에렉티온신전이다. 아크로폴리스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곳에 세워졌으며,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그의 삼지창을 내던져 꽂힌 곳이 이곳이며, 지혜의 신 아테나가 올리브나무를 심은 곳이 이곳이다. 따라서 이 신전에는 이들 신들의 전설을 본뜬 조각상들이 있다.
이 신전은 아테네의 신화상의 왕인 에릭토니우스(Erichthonius)의 이름을 따 붙인 신전이다. 따라서 아테나, 포세이돈, 에릭토니우스를 제사지내왔다. 2개의 신실(神室)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아테나신실, 또 하나는 포세이돈신실이다. 이 신전은 아름다운 여인상기둥(女像柱)들로 유명하다.
원래 이 신전은 페리클레스가 아크로폴리스를 위하여 설립 계획을 꾸몄으나 펠레폰네소스전쟁으로 그의 생전에 이룩되지 못하고, 그가 죽은지 8년 후인 BC421년에 건설되기 시작하여 BC406년경에 완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니케신전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승리의 신 니케를 모시는 신전. BC420년경에 건축가 칼리크라테스(Kallikrates)에 의해 건축되었다. 이오니아 양식이다. 이 신전 역시 1686년 터키에 의해 분해되어 입구에 거대한 대포가 놓여져 있었다. 1836년~1842년 사이에 복원되었다. 1936년에 플랫폼이 다시 붕괴되어 재복원하였다.
디오니소스극장
아크로폴리스 남동쪽 비탈에 있는 반원형의 극장. 이 극장은 처음에는 BC6세기 무렵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에 의해 디오니소스 훼스티발이 개최된 이래 목조로 세워졌었다고 한다. 이후 BC5세기 황금시대 동안에 매해 훼스티발이 이곳에서 열렸고, 정치인들이 공연의 스폰서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극장은 BC342~326년 사이에 리쿠르구스(Lycurgus)에 의해 다시 돌과 대리석으로 재건축되었다. 이후 로마시대에도 극장은 공연은 물론 국가경사나 의식에 사용되었다. 관객석 맨 앞줄에는 귀족석까지 마련되어 있다. 무대 뒤쪽 한 층 높은 곳은 배우들이 연기하던 곳인데, 그 밑에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일생을 묘사한 뛰어난 조각이 남아 있다.
고대 아고라
아크로폴리스 북서쪽에 있는 고대 그리스 유적지. 아고라란 광장이나 시장을 뜻하는 말이다. BC6세기경부터 건물과 신전이 들어서고, 광장 주변에는 노점상이 모여 시장이 서기도 했던 곳이다. 뿐만 아니라 정치 이야기와 연설을 듣는 등 시민들이 정보를 얻던 곳이기도 하다.
헤파이스테이온(Hefaisteion)신전을 비롯하여 아레스신전, 아그리파 음악당, 대배수구 To Megalo Avlaki와 이오니아식 기둥 등이 고대 그리스의 문화를 이야기해 주고 있다. 특히 아그리파 음악당은 아고라에서 가장 큰 건물로, 축조 당시 2층이었다. 3세기에 파괴되었다가 4세기 들어 그 자리에 체육관이 세워졌고, 대학 건물로 이용되었다.
올림피아 제우스신전 올림포스 산의 제우스에게 봉헌된 신전 유적지. 전설에 따르면 이 곳에 신전이 세워진 것은 신화상의 듀켈리온(Deucalion)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으며, 역사시대에 제우스 숭배가 시작되었다. BC515년 아테네의 참주(僭主)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착공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AD124~125년경에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에 의해 완성되었다. 신전 안에는 황금과 상아로 만든 제우스 상이 있다. 아크로폴리스보다 웅장했다는 건물은 4세기에 고트족이 파괴했고 지금은 열다섯개의 코린트식 기둥만 남아 있다. 발굴은 1889년~1886년에 펜로즈(E. Penrose)에 의해 그리고 1922년에 웰터(G. Welter)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후 트라블로스(Travlos)에 의해 1960년대에도 이루어졌다.
신타그마 광장 아테네 중심이 되는 곳으로 아테네에서 그리스 각지로 뻗는 거리는 이곳을 기점으로 삼고 있다. 신타그마는 헌법광장이라는 뜻인데 이 이름은 1843년 이곳에서 최초의 헌법이 공포되었기 때문에 지어진 것이다. 일대는 관청가, 비즈니스가, 쇼핑가로서 호텔, 항공회사, 관광여행사도 많다. 엘리니콘 공항에서 출발하는 공항버스도 이 광장을 발착지로 삼고 있다. 광장에서 뻗어나간 에르무 거리, 미트로폴레오스 거리는 대표적인 쇼핑가이다. 이른 아침부터 밤 늦도록 사람들로 붐빈다. 광장에는 옥외 찻집인 카페니온이 늘어서 있어 커피나 스낵을 먹으면서 담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리카비토스 언덕
아테네 시가 한복판에 우뚝 솟아 있는 높이 295m의 암산으로, 기슭은 솔밭으로 덮여 있고 정상에는 19세기에 세운 희고 작은 교회, 아기오스 조르기오스가 있다.
내셔널
가든
헌법광장의 무명용사 묘 뒤편으로는 온통 돌로 뒤덮인 아테네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초록의 정원인 국립정원(National Garden)이 위치하고 있다. 공원 내에는 오리들이 제멋대로 뛰어 노는 넓은 호수와 불가리아산 늑대, 원숭이, 사자 등이 한데 모여있는 조그마한 동물원, 요기를 해결할 수 있는 카페 등이 있어서 아테네 시내를 돌다 지치면 몇 시간이고 편하게 쉴 수 있는 사랑받는 장소이다.
• 크레타 인류문명이 시작된 곳... 이곳에서 시작된 미노안 문명은 미케네 문명을 발현시켰고 현재 우리가 에게해 문명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미노안 문명과 미케네 문명을 뜻합니다. 에게해의 산실 크레타에서 기원전 3천년 경에 꽃피웠던 화려함을 찾아 보십시오.
크노소스궁전 [Palace at Knossos] BC 2000년경에 미노스 왕이 건설했다고 한다. 후 궁전은 지진으로 무너지고 BC 1700년경에 재건된 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궁전 유적이다. 안뜰을 사이에 두고 궁전이 동서로 서 있는데 서쪽부터 관람하게 되어 있다. 3500년전, 한변이 150미터이고 100여개의 크고 작은 방이 있었고 중앙에 넓은 정원이 있고, 남쪽은 신전 서쪽은 창고 북쪽은 객실이 있어 손님들이 기거할 수 있게 했고, 동쪽의 경사면에는 미궁이라는 복잡한 궁궐이 있었다. 동쪽 궁에서 가장 눈에띄는 것은 욕실의 <돌고래 벽화>이다. 궁전내의 모든 길은 돌로 포장되었고 3층까지 여러 개의 층계들도 돌로 만들어졌다.
기둥들은 진한 밤색으로 차분한 느낌인데 아래가 좁고 위가 굵은 가분수형이지만 안정감이 있으며 거의 모든 벽면이 프레스코화로 처리되어 있어 밝고 화려한 느낌을 준다. 허물어진 창고 속에는 큰 항아리가 남아있는데 그 속에서 콩 보리 수수 무화과 등의 곡식이 발견되어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왕비의 방에는 모자이크 무늬로 아주 날렵하게 생긴 욕조가 있는데 크기가 너무작아 어린이용 처럼 보인다. 크노소스 궁전은 기원전 1750년경 지진으로 파괴된 후 그 자리에 다시 세워지기를 몇번 거듭했지만 기원전 1375년 아카이아인의 왕조가 갑자기 멸망한 후로는 다시 세워지질 못하고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이 유적발굴은 트로이를 발굴했던 하인리히 슐리만에 의하여 시도되었지만 오렌지나무의 배상문제로 결국 포기했는데 1900년 영국 고고학자 아더 에반스가 발굴에 성공했다.
미노타우로스의 전설이 깃든 미궁. 약간 낮은 곳에 있어 위에서 내려다보면 폐허 속에 칸막이 벽만 남아있어 실망하지만 실제 내려가 좁은 회당을 돌면서 방들을 구경하다보면 정말 미궁임을 실감한다. 그러나 복도는 좁고 방도 작아 황소괴물이 살아 있을것 같지 않았다. 미노스의 왕녀 아리아드네가 실타래의 기적으로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를 살려낸 사랑과 무용담의 현장이다. 이곳의 프레스코화는 황소의 전신에 힘이 솟구치는듯 하고 호화롭게 꾸민 여자 투우사도 날렵하여 생동감이 멈치는 투우 그림. 수초를 헤치고 다니는 돌고래의 모습. 팔찌 목걸이 뿐아니라 귀밑머리까지 장식한 세여인의 그림은 현대 여인을 보는 것 같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
이라클리온 관내 가장 서쪽 끝에있는 크레타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의 묘지. 베네치안 워(Venetian Wall) 내 평평한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희랍인 조르바> 등의 저자로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이다. 그의 묘지석에 '나는 아무런 희망도 가지고 있지 않고, 아무것도 두렵지 않으니 정말 자유로운 것 아닌가?' 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크레타 고고학 박물관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과 비교해도 절대로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크노소스 궁전의 많은 출토품이 수장 ․전시되어 있다. 뿔 모양의 술잔과 신화에 바탕한 그림, 물고기 문어 등이 그려진 아름다운 도자기들, 가슴을 드러낸 채 뱀을 들고 있는 상아로 만든 뱀의 여신상 등은 크레타 문명의 화려함과 섬세함을 보여준다.

• 산토리니
깍아지른 절벽 위에 하얀 집들이 옹기종기...
전형적인 지중해의 느낌을 주면서도 뭔가 신비한 섬. 산토리니 섬은 가라앉은 화산의 일부로 지금도 화산활동이 활발하게 진행 중입니다. 혹자는 이곳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전설의 제국 아틀란티스라고도 하지요.
수많은 책표지와 엽서를 장식했던 이아마을의 일몰, 밤거리에서 만나는 휘황한 불빛들과 여행자들의 웃음소리...
지중해의 낙원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아 마을
이 곳은 섬의 북쪽 끝 해발 300m 로 솟아있는 암석 곶에 자리한 조그마한 마을이어서 일몰을 지켜보기엔 그만이다. 바다와 접한 낭떠러지에는 하얀 벽에 파란 지붕이 멋지게 조화를 이룬 교회와 집들이 늘어서 있다.
이아 시는 산토리니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데, 석양이 지는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마을 끝의 풍차가 있는 곳으로 해질 무렵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게 되므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아 시의 끝에서 바라보는 주변의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사라져가는 석양은 정말 일품이다.

고대 티라 유적지
페리사 해변과 카미리 해변 사이에 있는 작은 산꼭대기에 있는 유적지로 미노아 문명의 후반기에 속하는 동굴 벽화가 있으며, 기원전 10세기 경의 도시 유적으로 산토리니 안에서는 가장 최근의 것이라고 한다. 정상에 서면 검은 모래가 깔린 카마리 해변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 델피 신탁의
도시...신의 뜻을 받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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