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키 이스탄불
셀축 파묵칼레 올림포스
카파도키아
• 이스탄불
이스탄불이라는 도시 안에 유럽과 아시아로 나뉘는 경계선이 있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삶이 공존하는 도시...
과거 제국을 호령했던 영광과 이슬람 모스크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아잔소리...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서민 시장...
이스탄불 사람들의 삶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눈인사를 건네면 주인은 이방인 여행자에게 터키 티 한잔을 권한다. 티 한잔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면 이내 여행자의 외로움은 사라지고, 주인의 주름진 눈가에 흐르는 따스한 빛이 가슴에 들어온다.
그랜드 바자르 15세기에 처음 나무로 지어진 이후 화재 등으로 인해 소실되었지만 이후 재건하여 현재와 같은 형태의 건물 형식을 띠게 되었다. 그랜드 바자르는 한마디로 이스탄불의 큰 시장으로 터키의 민족적 향기가 감도는 토산물 가게로 가득찬 쇼핑의 천국이다. 출입구만 해도 20개가 넘고 상점은 5천개가 넘을 지경이다. 남쪽은 베야짓, 서쪽은 이스탄불 대학, 동쪽은 술탄아흐메트와 접해 있고, 일단 들어가면 좀처럼 같은 출입구로 나오기 힘들다. 굉장히 작은 상점들이 무수하게 들어차 있지만 대부분 같은 품목끼리 몰려 있기 때문에 손쉽게 쇼핑할 수 있다. 옛 부터 시장이었던 이곳은 내력 있는 골동품 가게나 금은 세공점이 많다.

돌마바흐체 궁전
오스만 제국의 두번째 왕궁으로 1814년의 대화재로 대부분 불타고 31대 술탄인 압둘마지드에 의해서 1843 ~ 1856년에 걸쳐 석조 궁전으로 재건되었다. 유럽에서 보내온 수많은 헌상품과 선명한 색채가 그대로 남아 있는 사방의 벽들을 보면 호화스런 생활과 화려함의 극치를 느길 수 있다.
궁은 세부분으로 나뉘는 데 정치와 행정이 이루어졌던 공공빌딩과 왕좌가 있는 홀이 가운데 있고 홀 옆으로 하렘이 있다. 궁에는 대략 250개가 넘는 방과 43개의 홀이 있으며 각 방의 실내장식을 각각 다른 분위기로 꾸미는 화려함을 보인다. 탁트인 홀에 매달린 수정 샹들리에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에게 받은 헌상품으로 무게는 4.5톤이며 750개의 촛불 챔프가 켜져 있다. 궁과 궁의 각방을 꾸미는데 14톤의 금과 40톤의 은이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현재의 화폐가치로 환산해도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사실 이 궁은 오스만제국의 약화가 가속화 되어가는 시점에 서구화를 지향하고 국력 쇄신을 도모할 목적으로, 보스포러스 해변가에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방해 초호화판으로 건립 되었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막대한 건축비는 왕궁 재정을 어렵게 만들었고 결국 오스만 제국의 멸망을 초래하였다.
궁전 내의 시계는 9시 5분을 가리키고 있는데 공화제가 확립된 후 초대 대통령인 아타튀르크도 이곳을 관저로 사용하다가 1938년 11월 10일 집무 중에 죽었기 때문에 그를 추모하기 위해서이다.
보스포러스 해협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나누는 경계의 해협으로 양쪽으로 보이는 이스탄불의 정경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곳이다. 해협 양쪽으로는 비잔틴 시대와 오스만 투르크 시대의 궁, 모스크, 귀족들의 별장 등의 유적이 늘어서 있어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유람선을 타면서 경치를 감상하는 크루즈 코스가 있다.
블루 모스크
구시가의 지역 이름이기도 한 술탄 아흐메트는 이스탄불 관광의 중심지이며 '블루 모스크'로 이름 난 모스크의 이름이기도 한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는 내부의 푸른색의 타일과 어우러진 조명으로 블루 모스크란 애칭으로 더욱 유명한 곳이다.
블루 모스크는 술탄 아흐메트 1세가 1600년대 초에 세운 이슬람 사원으로 종교적으로 중요한 결정사항이나 축제, 집회와 같은 행사들이 치뤄졌다. 모스크 내부는 푸른색이 도는 화려하고 정교한 문양의 타일로 장식 되었으며 특히 200개가 넘는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스텐드 글래스와 어우러져 내는 빛이 환상적이다. 이 빛이 반사하고 산란해 아름다운 푸른 빛을 만들어 블로 모스크란 아름다운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블루 모스트의 돔은 직경 27.5m, 높이 43m나 되고 바닥에 깔려 있는 양탄자도 볼거리다. 가지각색의 빛깔과 무늬가 정성스럽게 짜여져 하나의 조화를 이룬다. 블루 모스크의 성스러운 초록 양탄자는 에디오피아에서 선사 받은 것이라 한다.
블루 모스크를 나오면 굉장히 넓은 술탄아흐메트 광장이 있다. 잘 조성된 평온한 이 광장은 여행객과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서쪽은 광장은 로마시대의 대 경기장 터였다.

성 소피아 사원
성 소피아 사원(아야 소피아)은 톱카프 궁전 앞에 있는 적갈색의 건물로 동로마 제국 시대 그리스 정교의 본산지인 성당이었다. 그 후 오스만 터키 제국이 점령하여 이슬람교 사원으로 사용되었는데, 지금은 그리스 정교와 이슬람교 이들 두 종교가 공존하는 박물관으로 남아 있다.
사원의 내부에는 비잔틴 문화를 상징하는 다수의 모자이크 벽화가 남아 있는데 그리스도를 품에 안은 성모 마리아의 모자이크 벽화나 휴스티아누스 대제가 화려하게 묘사된 그리스도 좌상은 특히 유명하다. 비잔틴 시대의 모자이크 벽화는 콘스탄티노플이 1453년 오스만터키에 의해 함락되면서 모두 옻칠로 가려지게 되었다. 여기에 첨탑과 미흐라브(Mihrab, 메카의 방향으로 움풀 패인 곳)가 더해져 이슬람교 사원으로 변모한 것이다. 1931년 미국 고고학 조사단에 의해 숨겨진 벽 안의 모자이크화가 발견된 후 성 소피아 사원은 비잔틴 시대의 최대 유적으로 또 다시 각광으로 받고 있다.
톱카프 궁전
17세기 천하의 강대한 힘을 과시하던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이 세계 곳곳에서 거둬들인 진기한 보물과 눈부시게 아름다운 헌상품들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골든혼, 보스포러스, 다다넬스의 3면의 바다가 만나는 성터에 위치 고전적인 오스만풍의 건축양식을 가진 궁전으로서 15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쳐서 강대한 권력을 가졌던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 거주하던 성이다. 500여 년 동안 오스만 제국을 통치했던 36명의 술탄 중에서 반 정도가 톱카프 궁전을 사용 했다고 한다.
궁전은 그 자체가 하나의 마을이다. 의사당이나 술탄의 거실은 물론 왕실의 여인들이 거처했던 하렘은 더욱 흥미롭다. 제 2정원의 오른쪽에는 굴뚝이 딸린 큰 부엌이 자리 잡고 있는데 천장이 돔으로 된 10개의 큰 방과 28개의 굴뚝이 있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수많은 사람들이 생활했음을 알 수 있다.
골든 혼에서 바라보는 톱카프 궁전은 마치 한 폭의 그림이다. 그러나 그 장엄한 아름다움 외에도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군사상 최적의 요새임을 알 수 있다. 이곳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언덕 끝에 동서교역의 접점인 보스포루스 해협을 향해 대포를 포진해 놓았던 군사요지이다. 이 때문에 "Top대포, Kap문, Palace 궁전"에서 톱카프 궁전으로 불려 지게 되었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의 최고 전성기에는 4~60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생활했던 만큼 궁전 자체가 하나의 마을 이었을 정도로 궁전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아직도 궁전을 복구중으로 미공개된 부분이 많다. 현재 각종 유물과 보물은 4개의 방으로 나뉘어 전시 되고 있다. 총 몇 점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따라서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이 궁전에만 하루 정도 투자하는 것이 좋다.
아야소피아 Ayasofya 성당의 뒤편으로 돌아가면 곧게 뻗은 길 끝에 있는 궁전 입구인 '제국의 문'의 웅대함이 멀리서도 느껴진다. 제국의 문을 들어서면 지금은 주차장으로 쓰이는 제 1정원이 나온다. 우측의 매표소에서 티켓을 구입해 들어가면 바로 제 2정원의 잘 다듬어진 화단과 푸른 잔디가 있다. 정원을 에워싼 궁전 내부의 건물들은 각기 독특하고 오른쪽 끝에 또 다른 매표소가 있는 곳이 바로 하렘이다. 하렘은 독립된 박물관으로 취급되고 있으므로 별도의 티켓을 구입해야만 입장이 가능하다.
이집션 바자르
예니 모스크 부속 건물로 술탄 어머니의 요구로 만들어졌다. 과거에 이 시장을 통해 인도, 아시아, 아랍에서 온 향신료, 비단 등이 매매 되었는데 이 물건들이 대부분 이집트를 통해 들어왔기 때문에 이집션 바자르라고 한다. 지금은 대략 100개의 상점이 있다.
• 셀축
지금은 한적하고 조그만 시골마을에 불과하지만 만물의 유전을 풀어낸 철학자 헤라클에이토스와 시인 칼리노스를 낳고, 세계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을 품고있는 도시.
과거에는 그리스나 페니키아 상인들로 인해 물자와 사람들로 넘쳤고 사도 바울이 머물며 전도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알렉산더와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고트족에 의해 멸망했지요.
이 작은 마을에 무슨 사연이 이리도 많을 까요?
아주 잘 보존되어 있는 에페스 유적을 둘러보며 이 도시의 사연을 들어보세요...
에페스 유적군 헬레니즘과 로마 유적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에페스 유적군은 셀주크에서 쿠사다시 가는 길을 따라 가다 중간에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나온다. 정문으로 들어가서 에페스의 부유한 시민인 베디우스 안토니우스에 의해 지어진 베디우스 체육관과 네로 황제에 의해 세워진 스타디움이 있다. 성벽 옆엔 2세기쯤에 세워진 성모 마리아 교회도 있다. 당시 마리아가 신의 어머니라는 파가 있었고, 인간 예수의 어머니지 신의 어머니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네스토리우스파도 있었다. 서기 431년 이 교회에서 열린 3차 종교회의에서 패한 네스토리우스는 이단으로 몰려 추방됐고, 451년 리비아의 사막에서 죽었다고 한다.
유적군 정문 왼쪽으로 거대한 원형극장이 나온다. 고대 헬레니즘 시대에 처음 건설되었고 로마시대에 확장되어진 로마극장으로 에페스가 해안도시였을 때 피온산(Mt. Pion) 언덕을 따라 바다를 바라보게 지어진 야외극장이다. 25,000여명을 수용했으며 아르테미스 신을 섬기던 데미트리우스와 장인들이 사도 바울에 대한 반대 운동을 벌이기도 한곳이다. 현재도 복원 후 매년 봄에 열리는 에페스 페스티발에 민속쇼 등이 공연되고 있다.
대극장 꼭대기에서 밑을 바라보면 쿠사다시 쪽으로 뻗어나간 길이 훤하게 보인다. 바로 이 길이 항구거리(Harbour St.)이며 에게해안의 쿠사다시 항까지 뚫린 예전의 고속도로였다. 코린트 스타일의 기둥이 쭉 늘어서 있고 대리석 포장도로 밑으로 배수시설이 되어 있다고 한다. 마차들은 해안에 도착한 물건들을 싣고 이 길을 따라 에페스로 왔다.
대극장을 따라 도서관 쪽으로 난 대리석 거리는 항구거리와 같이 정교한 배수시설이 되어 있고 남도로의 오른쪽은 시장 (Commercial Agora)으로 고대 에페스 상업의 중심이었다. 도로의 왼쪽 끝의 멋진 빌딩은 몇몇 고고학자에 의하면 매춘굴이었다고 한다. 대리석 길을 따라 가면 길바닥에 새겨진 발과 여인의 상체 그림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세계 최초의 광고라 일컫는 창녀촌 광고다. 이 발보다 큰 사람, 즉 성인만 오라는 표시였다고 한다. 창녀촌은 바로 그 위쪽의 아고라 터 맞은편에 있는데 가로 세로 각각 20.5m의 터에 정원이 있고 방들은 모자이크 벽화들로 장식돼 있다. 그 당시 윤락녀들은 교육 수준이 높았고 각자 자기 소유의 집이 있었다고 한다.
대리석 거리 맞은편에는 에페스 유적지에서 가장 잘 보존된 건축물인 2층짜리 셀수스 도서관이 있는데 세기 초 로마 제국 시대에 아시아 지역을 관할 하고 집행하던 셀수스(Tiberius Julius Celsus Polemaeanus) 가 죽은 후 그의 아들이 아버지를 기리며 지은 도서관으로 1970년 오스트리아 고고학 협회에서 복구를 시작했다. 정면의 벽감에는 4개의 여성상이 있는데 지혜(Sophia), 사색(Thought), 학문(Episteme), 미덕(Arete)을 상징한다. 발견된 여성상은 현재 비엔나 에페스 박물관에 있고 이곳에 세워져 있는 것은 진품을 그대로 본뜬 것이다. 9개의 계단을 올라 건축물을 올려다보면 정교한 조각의 아름다움에 한번 더 놀라게 된다. 넓이 21m의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12,000여 장서가 보관되었고 과학적인 구조에 의해 온도와 습도로부터 장서를 보호했다고 한다.
도서관을 나와 왼쪽으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의 문이 있는데 이 문은 BC 3세기에 노예의 신분에서 자유인이 된 부유한 시민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가 아우스쿠스와 그의 사위인 아그리파에게 봉헌한 것이다. 게이트 안쪽으로 아르테미스의 상과 과거 복구 작업의 전개도 등이 전시되어 있고 안쪽으로 시장터와 연결된다.
도서관 앞쪽으로 쭉 뻗은 이 길을 쿠레테스 거리라고 하는데 오데온 까지 이어진 오르막길이다. 이 거리에 있는 “옥타곤”이라고 알려진 무덤에서는 약20세 가량의 젊은 여자의 뼈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계속 길을 따라 올라가면 아름다운 신전과 집터, 분수대, 극장, 목욕탕 터가 있고 넓은 평야에는 그 외에도 수많은 유적지가 나온다.
하드리아누스 신전(Temple of Hadrian)은 로마 황제 하드리안과 아르테미스 여신, 그리고 에페스 시민을 위해 118년 지은 코린트 스타일의 사원으로 운명의 여신 티케(tyche)가 조각된 아치형의 정문과 양손을 벌린 메두사가 조각된 안쪽 문의 장식이 매우 화려하다. 두 문의 사이로 신들, 동물의 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신전 건너편에 현재까지 복구 공사중인 집들이 있는데 길가 상가 앞으로 5세기의 모자이크가 남아있다.
트라야누스의 샘(Fountain of Trajan)은 현재 복구가 이루어 지고 있는데 당시에 거대한 트라야누스의 조각상 발밑에서 물이 흘러 내렸다고 하나 지금은 동상의 발만이 남아있다.
헤라클레스의 문(Gate of Hercules)은 4세기에 지원진 것으로 2층으로 된 문의 기둥에 헤라클레스의 상이 있다. 앞쪽의 승리의 여신 니케의 부조물로 장식된 돌덩이는 원래 이 문에 세워졌으나, 지금은 헤라클레스와 네마이안 사자의 싸움을 묘사한 부조물이 새겨진 두 개의 돌덩이로 구성되어 있다.
멤미우스 기념비는 로마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로마 시민들이 대 학살을 당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폴리오 분수는 마르나스 수로의 건설 책임자였던 섹틸리우스 폴리오에게 봉헌 된 것이다.
도미티안 신전은 도시에서 가장 큰 것 중 하나로써, 하나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주먹을 꽉 쥐고 있는 팔을 비롯하여 원형이 잘 보존된 머리와 함께 거대한 동상이 발견되었다.
프리타네이온은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봉헌된 것으로 정원에서 아테나 여신의 동상이 발견되었다. 풍요의 여신 인 아르테미스의 유명한 동상이 이 곳에서 완벽한 상태로 발견 되었다.
오데온 (Odeum)은 대극장 (Great Theater) 에 비해 규모가 작은 극장으로 1,400여명의수용이 가능하다. 150년 경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지며 강의나 작은 음악제를 열고 의회 회의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서기 1세기쯤 약 20만명의 인구가 살았던 에페스에는 당시 삶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번성했던 에페스가 비잔틴 시대에 망한 이유는 말라리아였다고 한다.
에페스 박물관
셀주크 시내에 위치한 곳으로 규묘면에서는 상당히 작을지라도 터키에 있는 가장 중요한 박물관 중의 하나이다. 소크라테스의 머리, 성자의 동상 그 외에 수많은 두상들이 진열 되어 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아르테미스 여신의 독특한 두 개의 동상이다.
• 파묵칼레
' Cotton Castle ' 파묵칼레는 솜의 성이라는 뜻입니다. 파묵칼레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계단식 온천인데 마치 솜으로 욕조를 만들어 물을 가두고 겹겹이 쌓아 올린 것 같은 느낌이지요. 목화를 따기 전 솜사탕처럼 달려있는 목화가 계단식으로 펼쳐져 물을 담고 있는 광경은 여행자의 마음을 끄는 그것이고, 그 계단을 타고 흐르는 온천수는 여행자의 피로를 씻어주기에 충분합니다.
밟으면 폭신폭신할 것 같은 석회봉... 하지만 자연이 만든 시멘트로 정말 단단하답니다.
석회봉 파묵칼레는 목화솜으로 이루어진 성이란 뜻으로 도시는 온통 눈이 내린 것 같이 새하얀 모습이다. 칼슘 성분의 온천수가 흘러내리면서 층층이 바위를 지금의 하얀 모양으로 바꾸어 놓았다. 게다가 이 온천수는 질병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고 역사적으로도 치유와 휴양을 위해 많은 위인들이 방문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관광객과 지나친 개발로 온천수가 줄어들어 터키 정부에서는 정책적으로 계획성을 갖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온천수가 흘러 나오는 지역 이외에도 곳곳에 고대 유적들이 들어서 있어 원형극장이나 신전등 당시의 건축물도 구경할 수 있다.
• 올림포스
톰소여의 모험에 나오는 나무 위 오두막집을 기억하십니까?
어린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그 오두막집을 부러워했을 겁니다.
이곳 올림포스에선 당신도 톰소여가 되어 소나무 위 트리하우스에 짐을 풀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전설의 불꽃이 있다는 키메라로 모험을 떠나 보세요.
당신안에 잠들어 있던 아이같은 마음과 모험심이 벌떡 일어서 앞으로의 여행에 힘이 되어 줄 겁니다.
키메라 불꽃 투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
• 카파도키아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카파도키아는 화산폭발로 생긴 화산재가 오랜 시간에 걸친 풍화작용으로 매우 특이한 모양을 만들어내 마치 화성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도시입니다. 그 예로 유명한 영화 스타워즈의 촬영장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버섯모양의 바위들 때문에 스머프마을 이라고도 불리고 땅속 수십미터까지 파고들어간 지하도시도 있습니다.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에까지 등장하는 카파도키아는 터키 여행의 하이라이트이며, 지구상에서 가장 특이한 곳에 방문하는 경험을 주는 곳입니다.
괴레메 야외 박물관
카파도키아 지역에서 버섯 모양의 집들과 이를 이용한 교회를 볼 수 있는 곳으로 괴뢰메 야외 박물관이라 불린다. 원래는 수도생활을 할 목적으로 동굴을 파고 들어가 기도와 최소한의 생활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으며 점점 규모가 커졌으며 벽화나 여러 가지 상징적인 그림과 무늬들도 나타났다.
암굴교회라 불리는 이곳의 교회들은 애초의 목적인 수도외 기도를 위해 출입구와 통풍, 자연광을 위한 작은 창문 정도를 제외하고는 외부에서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맨 처음에는 1년 365일을 뜻하는 365개의 교회가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그보다 적고 관광객에게는 약 30여개가 개방되고 있다.
몇개의 유명한 교회들이 있는데 괴뢰메에서 가장 크고 벽에 프레스코 벽화가 가장 잘 보존된 '토칼르 교회'와 수도원 시설을 비교적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카란륵 교회'등이 있다. 그 외에도 성 바바라 교회, 뱀이 있는 교회, 차르클루 교회등이 있다.
지하도시
언제 만들어졌는지 그 기원은 정확하지 않지만 주거인구가 늘면서 그 규모는 차츰 커졌고 이들이 지하에 도시를 만들게 된 이유는 종교적인 탄압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지하도시는 맨 처음 길 잃은 양을 찾으러 동굴로 들어간 양치기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현재까지 30여개의 지하도시가 발견되었다. 현재 지하도시는 네브쉐히르에서 약 30km정도 떨어진 데린쿠유와 카이막클르에서 볼 수 있다.
지하도시는 지상으로 통하는 몇
개의 출입구를 제외하고는 지상에서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이며 그 출입구조차도 우물이나 동굴 같은 것으로 위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출입구 안으로는 커다란 돌문의 특수 장치가 있어 안에서는 열고 닫기가 손쉽지만 잠긴 상태에서는 밖에서 여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런 것으로 보아 지하도시는 방어에 최선을 다 한 것으로 보인다. 지하도시의 규모는 상당히 방대하고 복잡해서 현재까지도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없으며 따라서 완전히 개방된 것은 아니다. 세월이 흘러 인구가 늘어나면서 계속해서 도시를 늘려가 지하 몇 층까지 연결되어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지하도시는 가이드의 안내로 돌아볼 수 있는데 매우 복잡하고 미로형의 구조를 띠고 있어서 자칫 길을 잃기 쉽다. 때문에 가이드가 안내하는 경로 이외에는 입장할 수 없는 곳이 많다. 지하도시의 각 장소들은 지금도 불을 피운 흔적이나 선반 모양의 침대들이 있어 당시의 용도를 알 수 있다.
파샤바
젤베 근처에 있는 계곡으로 버섯바위를 가장 잘 볼 수 있다. 그림엽서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두 개 또는 세 개의 모자를 쓰고 있는 버섯 바위들은 토착인들이 바위 속에 요정이 살고 있다고 믿어서 ‘요정이 춤추는 바위’ 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실제로 이 바위들은 비잔틴 시대에 수도승들의 은신처였다. 수도사 성 시메온이 거처한 바위가 있어 일명 ‘수도사의 골짜기’ 라고 한다.
데브렌트
아바노스, 젤베 그리고 윌굽 사이에 위치한 계곡으로 토양 색깔 때문에 ‘핑크 계곡’ 이라고도 불린다. 이 계곡에선 사람들이 살지 않아서 집들이나 교회를 찾아 볼 수 없다. 이 계곡의 바위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낙타 바위이다. 자연의 형상만으로 만들어 졌다는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이다. 그 외의 춤추는 바위, 손바위 등 보는 사람마다 바위 형상이 달라 보여 일명 ‘상상력의 계곡’ 이라 한다.
아바노스
아바노스는 아나톨리아에서 가장 긴 강인 크즐르막 강에 의해 두 곳으로 나누어지는데 이곳은 도기로 유명하다. 히타이트 시대에 시작된 도기 예술은 지역 주민들이 크즐르막 해안에서 채취한 흙을 모래와 진흙으로 함께 섞어서 도기를 위한 흙을 만들었다. 이 곳의 도기는 여전히 수공업으로 아바노스 도자기 공장을 방문하면 도자기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으며 체험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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